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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사도라덩컨

☆ 벼리 2011. 7. 26. 14:02
         
 

 

 

이사도라 덩컨 

 

/ 폴모리아 연주 

 

 

 

 

 

 

 

 


 

이사도라 덩컨 / 폴모리아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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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위해 창조된 사람이지만, 또한 고통을 위해 창조된 것도 같아요."

 

-이사도라 덩컨(1877~1927)-

 근대 무용의 창시자이자 선구자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

 뉴욕·시카고의 최초공연이 성공하지 못하여 미국에서는 불우한 생활을 보냈다.

 1899년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에서 작은 규모의 리사이틀을 열어 인정을 받은 뒤, 파리·부다페스트·베를린·러시아 등 각지를 순회하였다.

 전통적인 투투(tutu)와 토슈즈(toeshoes)는 육체를 속박하는 것이라면서 싫어하여, 투명한 의상을 입고 맨발로 춤을 추는 등 고전발레 형식을 배격하고 자유로운 무용을 제창, F.쇼팽 등의 곡에 맞추어서 반(半)즉흥적으로 춤을 추었으며, 그리스신 바코스의 무녀(巫女)를 흉내내어 격렬하고도 도취적으로 머리를 뒤로 떨어뜨리면서 춤추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사도라 덩컨의 춤세계관은 그 시대의 여러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초 미국 여성들의 자유의 표상이었으며 자유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베를린·모스크바에 무용학교를 설립하여 무용수 양성에 힘썼고 G.크레이그·P.싱어·S.A.예세닌 등과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1913년 사고로 두 아이를 잃었으며, 1927년 9월 자신이 타고 있던 차의 뒷바퀴에 스카프가 말려들어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자유분방한 사랑과 무용으로 세계를 휩쓴 그녀는 한때 파리의

조각가 로댕에게 사랑을 못바쳐 안달했고,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드대공의 사랑을 받았다.  미국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그녀의 춤을 비방하던 성직자들을 적극 무마해 주었고,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이사도라처럼 춤추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랄 만큼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사도라가 파리에 머물고 있던 1913년 그녀의 어린딸 디어드로와

아들 패드릭이 유모와 함께 자동차를 탁 드라이브하다가 마차를

피해 강으로 추락하여 죽고 말았다.   사랑하던 자식들까지 자동차

때문에 잃어 버린 비운의 여인이었다.

출처 : 중년의 아름다운 동행~우소인
글쓴이 : 캔디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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